609521_106298_255.jpg

“난을 치는데도 법이 있지만 의도적으로 그것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법은 또하나의 굴레이기 때문이죠. 연습을 통해 스스로 깨우친 경험들이 축적되어야 독창적인 작품을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양석 김승방씨의 난은 자유분방하면서도 격조를 갖추고 있다. 또 항상 헌 신문지와 먹과 붓을 가방에 넣어 다니며 임서하고 연습하는 그는 흡사 수행의 길을 걷는 구도자와 같은 모습이다.

작품 ‘제비’는 2006년 3월 어느 날 아침, 집에 찾아든 제비 한 쌍을 소재로 했다. 작가는 농촌에서도 보기 힘든 제비가 도시 현관 문 위에다 집을 짓고 사는 것이 반갑고 소중하다는 뜻을 담았다.

무주전주유니버시아드, 서울올림픽, 어머니, 고향집 등의 작품은 아려한 향수를 느끼게 하면서 지난 일을 주억거리게 만든다.

지난 1968년 강암 송성용선생의 문하로 들어가 붓을 잡은지 근 50여년. 서예공부를 시작함과 동시에 문인화에도 관심을 쏟았다. 스승의 문인화를 자주 보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곧잘 묵매와 묵란을 비롯 사군자, 제비, 초가, 나무 정자, 갈대, 연과 물고기 등 실제로 경험하고 생각한 것을 작품화한다. 시같은 그림, 그림같은 시로 다가서는 까닭이다.

그가 쓰고 그린 한 문귀 한 글귀 혹은 새·난초의 그 어디에도 마음을 머물러 놓았거나 의식을 잔류시킨 곳이 없다. 단지 마음과 붓이 하나 되어 행필(行筆)의 완급(緩急)이 자연의 음악적 리듬을 타고 자유롭게 쓰여 졌을 뿐이다.

그동안 틈틈이 익힌 것을 있는 그대로 꾸미거나 화장기 없이 들고 나온 그의 진솔한 선비적 자세가 왜 그렇게 높아 보이는 지 궁금하기만 하다. 세련미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문인화, 그러나 그 어느 구석에서도 흠이 잡히지 않는 완벽한 몸가짐, 그러한 것이 바로 양석 김승방이 노리고 있는 서예적 표현 방법일지도 모를 일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교육자의 본분을 충실하게 지켜나가면서 예술의 접근을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시도한 그의 자세에서 그저 남의 체본에 의존하는 지금의 서단 풍토에는 큰 가르침으로 남을 것이다.

‘물 있으면 헤엄치고 신명나면 부래 부르고 힘들면 쉬어가세’ 선면(扇面) 중간에 개구리 두 마리가 봄을 맞아 세상 밖으로 나올 듯한 기세다. 붓 가는 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의 작품 세계를 통해 서예란 누가 누구 닮는다고 닮아지는 게 아님을 알 수 있게 할 터이다.

그는 은행나무처럼 노릇노릇 익어가는 한옥마을 전주향교 명륜당에서 난초 그림과 함께 모처럼 환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새전북신문 글 이종근기자, 사진 이철수(사진가. 용담호사진문화관 관장)